[메르스 쇼크에서 배우자] [5] 무너진 시민의식 의심환자는 지하철 출퇴근.. 1명 때문에 472명 격리돼 '수퍼전파자'엔 여론 따돌림 일부는 주위서 나쁘게 볼까 위험 지역 방문 숨기기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 사회를 뒤덮은 지난 한 달간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한국 시민사회의 민얼굴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국가적 전염병 사태 속에서 당국의 통제나 지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도생을 추구한 일부 시민의 이기주의적 행동이 공동체를 얼마나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지 보여줬다.
위험을 무릅쓰고 메르스 방역에 투입된 의료진과 보건 인력을 '메르스 감염원'으로 낙인찍고 기피한 일부 시민의 행태는 한국 시민사회의 비뚤어진 현주소도 확인시켰다.
◇'공동체의 손실' 안중에 없는 시민
이번 메르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 데는 보건 당국의 방역 실패 못지않게 일부 감염 우려자가 당국의 지침에 따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며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한 몇몇 개인이 메르스 위기를 증폭시켰다.
이들의 모습에서 불편과 희생을 감내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찾기 어려웠다.
141번째 확진 환자 A(42)씨는 지난 12일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여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진의 통제를 무시하고 병원을 이탈해 논란을 낳았다. 그는 병원을 찾을 때도 보건소 측이 보낸 구급차를 기다리지 않고 택시를 타고 갔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의료진의 지시를 어기고 진료실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메르스 감염 공포가 밀려오는 상황에서 보건 당국은 구급차를 40분이 넘어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 측의 진료도 A씨에게 더디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A씨가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의료진과 보건 당국의 지침을 넘어서 행동하는 바람에 그가 탔던 택시의 기사, 그의 곁에 있던 의료진 4명은 격리 조치됐다.
대구시 남구청 공무원인 154번 환자 B(52)씨도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에 들렀고, 지난 16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는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보름 넘게 삼성서울병원 방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정상 출근했다. 사태 초기엔 그렇다 쳐도 함께 삼성서울병원 병문안을 갔던 누나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 10일 이후엔 자기도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 뒤에도 신고 없이 평소처럼 활동한 것은 무신경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137번 환자(55)는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지난 2일 이후 9일간 서울 지하철 2·3호선을 타고 근무지인 삼성서울병원으로 출근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137번 환자 한 명 때문에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 조치된 사람은 472명에 달한다. 지난 8일 건국대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내 "환자와 접촉한 것 같다"고 신고해 동반 격리자를 최소화한 150번 환자의 차분한 대처와 대조적이다. 150번 환자 때문에 격리 조치를 받은 이는 가족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난 집에서 콩 구워 먹는 식으로 메르스 사태를 사적 욕구 해결에 이용한 '얌체' 시민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난 20일 자기가 마음에 둔 여성과 연락이 닿지 않자, 119에 "열이 난다는 삼성서울병원 여의사가 사라졌다"며 허위 신고해 즉결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이 그런 경우다. 이 남자의 신고로 경찰 인력 상당수가 5시간 동안 수색에 투입돼 헛수고를 했다.
◇의료진·감염자 '낙인찍기'
메르스는 우리 사회에 잠재한 '불신 증후군'을 함께 전파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에선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이대목동병원의 의료진 자녀 10여명을 귀가 조치했다.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해당 병원 의료진 가족과 같이 학교에 다니니 불안하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국대병원에서 응급실 당직 근무를 섰던 수간호사 김모(46)씨는 "중학생 아들의 담임교사가 자녀에게 "등교를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며 억울해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소방관은 "'우리 아파트에 소방관이 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을 듣고 힘이 빠졌다"고 했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전염된 사람이 언제든 전염시키는 사람으로 입장이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메르스 확진자의 절반에 가까운 81명을 감염시켜 '수퍼 전파자'로 불린 14번째 환자는 여론의 따가운 따돌림을 당했다. 이 환자는 최근 완치 판정을 받고 심리 치료 상담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환자와 방문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보건 당국에 감염 위험 지역 방문 사실을 뒤늦게 실토한 상당수 환자가 "주위에서 메르스 환자라 낙인찍을까 두려웠다"는 이유를 대는 것을 보면, 이런 낙인찍기가 오히려 잠재적 위험을 더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모든 것이 위태롭기만 한 '고(高)불안 사회'인 한국 사회에 메르스 같은 강력한 불안 요소가 얹히면서 시민사회가 갈피를 잃고 혼돈에 빠져든 것"이라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처럼 전염병 대유행의 경험이 있는 서구와 달리 한국 사회에선 재난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공동체의 손실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경험을 통해 시민사회가 자성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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