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아나타핀디카 장자 이야기
부처님은 라자가하에서 두 번째 안거를 보내는 동안, 그곳 한 부호의 요청을 허락하는 의미에서 승원을 비구 생활의 한 가지 필수품으로 삼는 것을 인정했다.
라자가하의 그 부호와 사왓티 시의 부호인 아나타핀디카 장자는 서로 상대방의 누이와 결혼해서 마치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라자가하의 부호는 사왓티 시보다 라자가하에서 훨씬 싸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구해 500대의 짐마차에 싣고 사왓티 시로 팔러 갔다.
그는 사왓티 시를 1요자나만큼 남겨놓고는 아나타핀디카 장자에게 전갈을 보내었고, 그러면 아나타핀디카 장자는 그를 위해 큰 환영행사를 열곤 했다. 그리고 둘이서 함께 같은 마차를 타고 도시로 돌아갔다.
물건들을 적절한 가격에 팔 수 있는 시장을 발견하면 라자가하의 부호는 한꺼번에 물건을 풀었고, 마땅한 시장을 발견하지 못하면 누이의 집에 남겨두고 돌아갔다. 아나타핀디카 장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이 라자가하에서 두 번째 안거를 지키고 있을 때, 아나타핀디카 장자는 500대의 짐마차에 물건을 싣고 라자가하의 부호는 아나타핀디카 장자에게 답신을 보낼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막 시타와나(Sītavana)의 은둔 승원에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돌아와, 부처님과 승단을 다음날 식사에 초대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등 준비를 하느라고 매우 바빴기 때문이다.
라자가하 시로 들어오는 내내 아나타핀디카는 성대한 환영행사가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부호는 그를 환대하는 말도 별로 하지 않았고, 단지 “사왓티의 부호여, 아이들은 어떤가? 건강한가? 그대가 편안하고 안락하게 여행했기를 바라네” 하는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만 할 뿐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바쁘게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종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여래와 승단에 풍부한 음식을 올리기 위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죽을 끊이고 밥과 카레를 만들고 여러 가지 채소 요리를 준비해야 한다.”
아나타핀디카는 슬슬 불쾌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는 이전에 만사를 제쳐두고 나와 다정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큰 축연을 여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구나.
아들을 결혼시키기 위해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고 잇는 것인가? 아니면 딸을 결혼시키려고 이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빔비사라 왕과 그의 군사들을 내일 축연에 초청한 것인가?’
라자가하의 부호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아나타핀디카를 찾아가 이전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에 아나타핀디카가 물었다. “부호여 이전에 그대는 만사를 제쳐두고 나와 즐거이 이야기하곤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음식을 준비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 내일 열릴 행사가 과연 어떤 것인가? 당신 딸이나 아들의 결혼식인가? 크게 보시하는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빔비사라 왕과 군사를 내일 축연에 초청이라도 한 것인가?”
이에 라자가하의 부호는 말했다. “부호여, 이것은 내 딸이나 아들의 결혼식 준비가 아니네. 빔비사라 왕과 그의 군사를 내일 축연에 초청한 것도 아니네. 나는 보시 행을 위한 크나큰 의식을 준비했던 것이네. 내일 여래와 그분의 승단을 초청했으니 그분들을 모시고 선행을 지을 것이라네.”
그때 라자가하의 부호가 감정에 북받쳐 ‘여래’라고 되뇌는 것을 들은 아나타핀디카는 온몸에 차오르는 5가지 희열을 느꼈다.
5가지란 적은 희열(khuddakā pīti), 잠시간의 희열(khaṇikā pīti), 물줄기 같은 희열(okkantikā pīti), 전율케 하는 희열(ubbegā pīti),온몸과 마음을 완전히 가득 채우는 편만(遍滿)의 희열(pharaṇā pīti)이었다.
아나타핀디카 장자는 그 5가지 희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시 발끝에서 머리까지 압도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희열이 몸 바깥에서 안으로, 다시 안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희열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을 느끼면서 라자가하의 부호에게 물었다. “부호여, 당신은 여래를 보았는가?” 그러자 라자가하의 부호가 대답했다. “그렇다네, 여래를 보았다네.” 아나타핀디카는 두 번째 걸쳐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고 이에 라자가하의 부호 역시 두 번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아나타핀디카가 부처님에 대해 물었다. “이 세상에서는 여래라는 말을 듣는 것조차 어렵지 않은가. 내가 지금 가서 여래 응공 정등각자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나타핀디카의 물음에 라자가하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아나타핀디카의 물음에 라자가하의 부호는 깊이 생각했다. ‘지금 부처님께 다가가는 것은 독사에게 접근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여래가 머물고 계시는 은둔 승원은 묘지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늦은 시각에 아나타핀디카 장자가 그곳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라자가하의 부호는 이렇게 답했다. ”장자여, 지금은 여래 응공 정득각자를 찾아 뵙고 예를 올릴 적절한 시간이 아니네.
내일 아침에나 여래를 찾아뵙고 예를 올려야 할 것이네.“ 이 말을 듣고 아나타핀디카는 내일 아침 일찍 부처님을 찾아갈 생각을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직 부처님에 대한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아나타핀디카는 여래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자신이 가져왔던 물건들과 자신에게 봉사하는 시종들에 대해서 더 이상 흥미가 없어져버렸다. 그는 저녁조차 거른 채 7층 저택의 가장 높은 방으로 갔다. 그리고 잘 꾸며져 있는 침대에 누운 다음 “여래····여래···”라며 중얼거렸다.
밤의 첫 번째 시간대가 지났을 때, 아나타핀디카는 일어나 앉아 부처님의 덕성에 대해 다시 성찰했다. 부처님을 향한 아나타핀디카의 감정은 극도로 증폭되어 그의 몸은 희열을 통해 빛을 방출했다.
마치 1천 개의 기름등이 밝혀진 것이나, 해 또는 보름달이 허공에 떠오른 것 같았다. 그럼으로써 밤의 어둠이 사라지게 되자 그는 생각했다. ‘해가 떠오를 때까지도 시간 가는 것을 몰랐구나.’
그처럼 그는 벌써 아침이 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하늘에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새벽이 오려면 밤의 시간대가 두 번이나 더 지나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런 식으로 그는 시간대의 끝이 될 때마다 잠에서 깼다. 그리고 새벽이 오기 직전에 그는 노대에서 연결된 길을 따라 그 집의 대문 가까이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는 7층 저택의 대문이 저절로 열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집에서 나와 도시의 대로를 따라갔다.
아나타핀디카 시와카(Sivaka)라는 도시의 입구에 이르렀을 때, 성자의 경지에 이른 수호신들은 미리 도시의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이 장자는 여래에게 예를 올리고 여래를 섬기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이 장자는 여래에게 예를 올리는 첫 번째 순간에 예류과의 경지에 들것이며,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여 삼보를 섬기는 재가 제자들 중 가장 고상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는 웅장하고 비할 데 없는 승원을 세울 것이니, 세상의 모든 곳으로부터 오는 모든 거룩한 승단에 그 문은 열러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장자에게 도시의 문을 닫아놓는 것은 적절한 일이 아니다.’
아나타핀디카 장자가 도시를 나서자 그의 몸에서 방출되던 빛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어둠에 두려움과 오싹함을 느꼈다. 몸의 털들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서 빨리 그곳을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라자가하 시는 1억 8천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대도시였다. 그중 9천만은 도시 안에, 나머지 9천만은 도시 밖에 살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면 도시의 문이 닫혔기 때문에 밤중에 죽게 된 자의 시신은 문 주위 성벽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지기 일쑤였다.
어둠 탓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아나타핀디카는 방금 버려진 시신을 밟게 되었고, 또 다른 시신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부패한 시체에 들어붙어 있던 파리들이 우르르 날아올라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시체들로부터 나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면의 희열 때문에 몸에서 방출되던 빛이 사라지자, 부처님을 향한 헌신적인 믿음 또한 약해졌다. 공포와 전율 때문에 모골마저 송연했다.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비켜났으면 싶었다.
이를 지켜보던 천상의 어떤 존재가 장자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장자에게 다가섰다. 그러고는 자신의 모습은 숨긴 채 작은 황금 종이 딸랑대는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고명한 장자여! 왕들에게 어울리는 10만 마리의 코끼리들도, 왕들에게 어울리는 왕가의 말10만 마리도, 우수한 혈통을 지닌 말들이 끄는 왕가의 마차 10만 대도,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10만의 왕녀들도 당신이 여래께 예를 올리고 그분의 법문을 듣고 승단을 섬기기 위해 발을 내딛으려고 일으킨 선한 의도가 지닌 가치의 256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네. 장자여! 나아가라. 그대의 길을 계속 가라.
오직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거룩한 일이고 찬탄 받을 만한 일이다. 물러선다면 그것은 추한 것이요, 찬탄 받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원서 주12
이 소리를 듣고 장자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나 혼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도 동행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장자는 다시금 당당해지고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에게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침내 공포를 물리친 것이다.
장자는 부패된 시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묘지를 통해 두려운 여행을 계속했다. 조금 지나자 들개와 자칼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장자의 마음을 또다시 흔들어놓았다,
그러자 이전처럼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렸다. 여기서 다시 천상의 존재인 시와카가 장자를 도와주었고, 그럼으로써 장자는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도중에 아나타핀디카는 또다시 이전처럼 빛이 사라지고 가슴이 졸아드는 상황을 만났으나 시와카의 도움으로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장자는 결국 시타와나의 동산에 도달했다. 동이 틀 무렵이었는데 때마침 부처님은 경행로(經行路)를 거닐고 있었다. 아나타핀디카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지금 세상에는 푸라나 카싸파 등 온갖 종교의 스승들이 자기가 부처님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래가 진정 바르고 원만히 깨달은 부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그는 계속 생각했다.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나를 아나타핀디카 장자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내게 지어준 이름은 수닷타(Sudatta)이다. 나 말고 누구도 이 이름을 아는 자가 없다. 정말로 여래가 바르고 원만히 깨달은 부처님이라면 나를 수닷타라고 부를 것이다.’
아나타핀디카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본 부처님은 경행로에서 내려와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아나타핀디카가 더 가까이 왔을 때였다. 부처님은 그의 마음을 읽어내고는 “사랑하는 수닷타여, 어서오너라”라고 말했다.
아나타핀디카는 부처님이 어렸을 적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는 부처님에게 다가가 발에 몸을 숙여 절하며 예를 올린 후 말했다. “가장 수승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잠을 맛있게 주무셨습니까?”
부처님이 답했다. “오, 아나타핀디카 장자여. 감각적 쾌락의 욕구에 물들지 않았고, 불타오르는 격정에서 자유로운 아라한은 고요하고 평온하니라. 그는 3가지 의착(依着, upadhi), 즉 번뇌를 제거하였으니 모든 슬픔이 끝났도다. 그러기에 아라한은 언제나 밤이든 낮이든 몸과 마음으로 안락하게 잠들고 안락하게 살아가느니라.” 원서 주13
“오, 아나타핀디카 장자여. 5가지 감각적 쾌락을 4가지 아라한도로 끊고, 번뇌의 불길을 꺼버린 아라한의 아라한과정에 의해 고요한 열반의 상태에 자주 들어가느니. 그는 번뇌의 이글거리는 불꽃을 꺼버리고 안락하고 고요하게 잠들며 안락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느니라.” 원서 주14
부처님은 4가지 자세 모두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는 아나타핀디카 장자를 점진적인 방법으로 가르쳤다. 즉
보시에 관한 논의,
계율에 관한 논의,
천상에 관한 논의,
도에 관한 논의를 가르쳤다.
또한 애욕에는 환난이 많고 출리에는 공덕이 많음을 설했다. 이윽고 부처님은 아나타핀디카 장자의 마음이 굳건해지고 능동적이고도 부드럽게 변했으며, 덮개를 벗고 고무되고 즐거워하고 투명해진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자신이 원래 발견했던 4제법을 설했고, 이를 통해 장자는 예류자로 정착했다.
아나타핀디카 장자가 말했다. “영광스런 부처님, 즐겁습니다! 영광스런 부처님, 몹시 즐겁습니다! 세속적인 비유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마치 뒤집어진 것을 바로 세운 것 같고, 덮인 것을 벗겨낸 것 같으며,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바른 방향을 안내하는 것 같고, ‘눈 있는 자는 여러 가지 형상을 보리라’고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그처럼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저에게 법을 명료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영광스런 부처님, 저는 부처님과 법과 승단을 피난처이자 귀의처로 인정하며 다가갑니다. 영광스런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저를 삼귀의에 의한 재가 신자로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귀의하겠습니다!”
이어서 아나타핀디카 장자는 부처님을 식사에 초대했다. “영광스런 부처님, 선행과 행복을 쌓기 위해 내일 아침식사에 부처님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부디 승단과 함께 저의 초청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침묵으로써 장자의 식사초대를 수락했다. 이에 장자는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를 표한 후 시계방향으로 돈 다음에 라자가하 부호의 집을 향해 떠났다.
원서 주
12
Sataṃ hatthi sataṃ assā/ sataṃ assatarīrathā/ sataṃ kaññā sahassāni/ āmukkamanikuṇḍalā/ ekassa padavītiharassa/ kalaṃ nīgghanti solasiṃ.
13
Sabbada ve sukhaṃ seti/ brāhmaṇo parinibbuto/ yo na limpati kāmesu/ sītibhuto nirupadhi.
14
Sabbā āsattiyo setvā/ vineyya daraṃ/ upasanto sukhaṃ seti/ santiṃ pappuyya cetas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