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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월 전 바랑 하나 메고 저 계단을 올라 금당선원에 몸을 가뒀던 스님들이 다시 108계단을 내려가 세상으로 향했다. ⓒ2014 불교닷컴 |
죽비를 내려놓았다. 3개월 동안 깔고 앉았던 좌복(방석)과 옷가지도 빨고, 산문을 나서려 삭발도 했다. 쌍계사 금당선원에서 겨울 안거를 난 17명의 수좌는 걸망을 지고 저잣거리로, 나설 참이다.
금당(金堂) 앞 계단을 내려서는 수좌의 얼굴은 까칠했지만 눈을 맑았고, 미소는 따스했다. 겨우내 정진하면서 큰 동요도 없었다. 108계단을 올라 올 때 걸망 하나였던 몸이 내려 갈때도 걸망 하나였다. 마음에는 담아 가는 것이 있을까?
“큰 공부랄 게 있습니까. 항상 같습니다. 큰 변화도 없습니다. 언제나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기장 묘관음사, 경주 무문관, 해인사 극락암 등등 출가해 선방에서 정진만 한 금당선원 열중(입승) 각현 스님의 말은 답답했지만 꾸밈도 거짓도 없었다. 그저 마음의 고요함을 챙기며 공부한 동안거 정진, 스님은 세상과 떨어져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쌍계사 금당선원(金堂禪院).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김대비(金大悲)와 삼법(三法)이라는 두 스님이 중국으로 유학갔다가 육조 혜능선사의 머리(정상)를 모셔와 절을 세운 자리에 들어선 선원이다. 대웅전 앞마당 끝에서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옥천교(玉泉橋)를 건너 가파른 108 계단 위에 올라서면 금당선원 구역이다. ‘頓悟門(돈오문)’ 편액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한다.
석달 전 바랑 하나 메고 금당선원에 들어왔다. 가파른 계단 위 담장에 둘러싸인 금당에는 세상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홀로 앉아 화두와 씨름했다. 산문에 몸을 가뒀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각현 스님은 “TV 신문은 일정 보지 않습니다. 세상일을 모를수록 망상도 적지요. 담 너머 세상 일은 선정에 드는 것을 방해할 뿐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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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계총림 금당선원. 동안거 정진. 방장 고산 스님도 수좌들과 함께 했다. ⓒ2014 불교닷컴 |
방장 고산 스님이 “수행자는 무애해탈하는 사람이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도시를 떠나 이곳에서는 그저 자유만 있을 뿐이다”고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육조혜능 대사의 머리를 중국에서 모셔와 매일 밤 공양을 올리던 삼법 스님은 지리산 아래 눈 속에 등나무 꽃이 핀 곳으로 옮기라는 꿈을 꾸고 지리산을 헤매던 중 12월 겨울에 봄과 같이 따뜻하고 등꽃이 만발한 곳을 찾았다. 그곳이 바로 이곳 금당선원이다. 겨울 선방은 춥다. 최소한의 의식주, 텔레비전과 신문도 없다. 세상 소식은 입심 좋은 도반이 지대방서 전하는 이야기뿐일 터였다. 금당선원은 따스했다. 음력 정월 보름을 앞두고 폭설 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지만 금당선원의 앞마당에는 동백꽃 봉우리가 수줍게 맺어 있었다.
“쌍계사는 겨울이 봄과 같습니다. 눈이 오더라도 곧바로 녹지요. 여느 선원과 달리 이곳에서 정진은 힘들지 않습니다.”
금당 안에는 육조의 머리을 모신 탑이 봉안돼 있다. 탑 아래 석함에 육조혜능의 머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법당에 탑이 모셔진 곳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금당 좌우편의 서방장(西方丈)과 동방장(東方丈)이 선방이다. 동·서방장은 각각 3칸짜리 건물로 많아야 10명가량 앉을 수 있는 13평 규모의 작은 선방이다.
금당선원에서 정진한 수좌 스님들은 급한 기색이 없었다. 취재진의 귀찮은 청에도 웃으며 도왔다. 하지만 이곳에도 치열한 정진이 있었다. 동방장은 하루 8-9시간 각자 알아서 정진한다. 50분 정진하고 10분 쉬는 규칙은 있지만 누구나 알아서 정진한다. 열중 각현 스님은 법랍 17년 정도 된 한 스님이 올해 장좌불와도 동안거를 났다고 귀뜸했다.
“한 스님은 3개월 동안 장좌불와를 했습니다. 공부가 부족해 잠시 졸기도 하지만 장좌불와를 깨지는 않았어요. 머지않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에서 수많은 고승이 배출됐다. 조선시대 벽송지엄-부용영관-서산-부휴선수-벽암각성-백암성총-응암낭윤-화악평삼-긍암계정 등으로 이어졌다. 근대에는 경허 스님이 탑전에 선원을 개설한 이래 용성, 운봉, 금오, 동산, 청담 스님 등이 이곳을 거쳤고, 효봉 스님은 1956년 당시 사미였던 법정 스님을 데리고 쌍계사 탑전에서 정진했다고 한다.
고승을 배출한 치열한 수행 현장이지만, 선원의 지대방에선 우스개 소리도 나오는 법이다. 금당선원의 지대방은 어땠을까. 참 심심한 답변이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었습니다. 차를 마시고, 서로가 들은 큰 스님 법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습니다. 세상 소식 몰라야 정진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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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이 수좌들과 금당선원 서방장에서 정진 모습을 보였다. ⓒ2014 불교닷컴 |
쌍계사는 선과 차, 범패의 근본도량으로 꼽힌다. 육조 혜능대상의 정상을 모시고, 법보단경, 즉 육조단경을 기본으로 정진한 삼법 스님의 ‘선(禪)’의 맥이 이어진다. 그리고 차시배지도 이곳이다. 신라흥덕왕 3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고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일구었다. 진감 국사는 범패의 연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 성지로 꼽힌다.
퇴락한 쌍계사를 현재의 대가람으로 중창한 것은 고산 스님이다. 지난 99년 총무원장을 역임한 고산 스님은 ‘다시 산으로 돌아왔다’.
“총무원 시절에는 모든 일이 고민이었지만 이곳에서 생활은 다르다. 어떤 고민도 없이 자유롭다. 얼마나 편안한가.”
금당에는 ‘金堂’이라는 편액을 중심으로 ‘世界一花(세계일화) 祖宗六葉(조종육엽)''六祖頂相塔(육조정상탑)’이라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좌우에 걸려 있다. 추사가 당시 금당에 살던 만허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써준 글씨다. 고산 스님은 기자에게 ‘세계일화 조종육엽’은 부처님의 근본 진리가 보리 달마에서 육조 혜능까지 이어져온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며, 금당선원이 최고의 수행처라고 자랑했다.
13세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범어사로 출가해 선(禪)과 교(敎)를 겸수한 선지식. 조계종 전계대화상이자 원로의원인 고산 스님의 성정은 매섭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산으로 돌아온 스님은 예정과 성정이 달랐다. 기자의 귀찮은 질문에 친절히 답했다. 먼저 나서서 금당과 동방장 서방장 현판과 주련을 차근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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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당선원에서 계사년 동안거를 지낸 수좌들이 열중 스님에게 인사하고 산문 밖으로 나섰다. ⓒ2014불교닷컴 |
서방장은 유명하다. 졸거나 졸려 눕거나 하면 사천왕이 나타나 깨우거나 발로 밟아 가위에 눌리게 해서 누구도 서방장에서는 눕지 않는다.
고산 스님은 “예전에 ‘범어사 사천왕’이라는 별호를 가진 한 스님이 정진하다 졸거나 누우면 호법신장이 나타나 깨운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고 서방장에서 큰 대자로 자는 데 밖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헛소리를 하고 있어 깨웠다. 깨어 일어난 스님 말이 호법신장이 있긴 있는가보다. 호법신장이 발로 밟아서 혼났다고 하더라”고 했다.
금당선원은 이번 겨울 안거에 17명이 방부를 들였다. 10명은 지난 여름부터 쭉 정진해 온 수좌들이고, 7명만 더 받았다. 30명이 방부를 신청해 7명만 받앗으니 경쟁률이 꽤 높다. 금당선원 수좌들은 공양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다.
이곳의 가풍은 ‘성취할 때까지 밀어붙여라’이다. 고산 스님의 말이다.
“동·서방장을 복원해 선방을 열 때부터 강조한 것이 불식촌음(不息寸陰)이다. 24시간 정진해야 한다. 기도하는 대중은 24시간 기도하고, 밭에서 일 하는 이도 24시간 해야 한다.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쉬지 말고 해야 한다. 수행자의 기본은 계정혜 삼학을 갖춰 쉼 없이 정진하라는 것이 고산 가풍이다.”
고산 스님은 “쌍계사 고산 가풍은 ‘성취할 때까지 밀어 붙여라’이다. 선방을 복원한 이후 계속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수행자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고산 스님의 화두와 선지식에 대한 설명은 남 다르다.
고산 스님은 “화두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다른 때보다 오늘 밥이 더 맛있다고 느낀다면 그게 곧 화두다. 내가 의심하는 모든 것이 화두다.”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손에 쥔 것은 모이지 않는다. 만지고 생각해 봐도 모른다. 불이 밝혀지면 안다. 화두를 참구해도 모를 때 선지식이 필요하다. 선지식은 불을 켜주는 역할을 한다. 어두워 보이지 않을 때 불을 켜면 확연히 드러나는 것과 갔다. 선지식의 법문이 바로 불을 켜주는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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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당선원에서 나가는 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세상으로 이어진다. 3개월 정진한 수좌 스님들 마음에는 무엇을 담았을까 ⓒ2014 불교닷컴 |
고산 스님은 만행에 나서는 수좌들에게 무엇을 당부할까.
“당부 할 것도 없다. 수좌 스스로가 다 안다. 해제해 만행하는 것은 화두를 의심해도 찾지 못한 것을 선지식을 찾아가 묻고 배우는 것이다.”며 “계정혜 삼학을 항상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해제했다고 극장이나 가고 설렁탕이나 먹고 해서는 안 된다. 놀음에 휩쓸리지 말고 선지식을 찾아 참방하라.”
동안거 해제 법회를 마친 납자들이 산문(山門)을 나선다. 만행이다. 선지식들은 늘 강조한다. 해제는 공부의 중단이 아니라 자리를 바꿔 계속 공부하는 것이다. 선지식들이 늘 강조하듯이 이들에게 해제는 공부의 중단이 아니라 자리만 바꾼 것일 뿐이다. 수행자에게 해제는 깨달음을 구했을 그때이다.
경남 하동 쌍계사=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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