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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달랐다. 불자가 아니었지만 절에서 먹고 자고 공부했다. 그렇게 3일을 보냈다.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 인문캠프 참가자 50명의 이야기이다.
‘해남, 다시 우리들의 첫 마음’을 주제로 대흥사에서 진행된 행사는 조성택 교수(고려대·시민행성 마음우주학교 교장)가 ‘붓다의 마음자리에서 우리 시대의 인문정신을 만나다’로 갈무리했다.
조 교수는 강연에서 첫 마음이 무엇인지. 첫 마음은 어떻게 내고, 유지해야 하는지. 보살과 시민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붓다는 누구인지 등을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 설명했다.
“나는 그대들이 왜 스님 눈을 피하는지 안다”
조성택 교수는 “첫날, 대웅전 부처님이 이 공간의 주인이니 인사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 한 사람도 인사하지 않았다. 낯설었기 때문에 인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해했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공양간에서 스님과 마주쳤을 때 시선을 피하는 여러분을 발견했다. 나는 여러분이 단지 낯설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스님을 공경하지 않거나 우습게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오해될 수 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절에서 3일이 지난 오늘 아침, 희망자만 미황사에 가도 좋다고 했는데 전원이 함께 가서 놀랐다. 법인 스님은 ‘인문학은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그것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는 종교 가운데서도 격식 형식 무시하는 자유로운 종교”라고 했다. 어떤 종교가 부처님 모셔진 장소를 불자가 아닌 사람에게 개방하겠냐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불교처럼 개방성을 가진 종교는 드물다. 서구에서 불교에 관심을 갖고 배우려는 것 또한 이런 개방성이다”라고 했다.
조 교수는 “이(법당) 안에서 예수, 마호메드 이야기를 비롯해 어떤 세속적 이야기도 좋다. 한 가지. 부처님이 여기 계시다는 의식만큼은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시내에서 갈 곳이 없을 때 명동성당에 간다고 했다. 그곳에서 신부·수녀를 만나면 자신도 인사를 건넨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사는 상호존중이다.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라고 했다.
“축구 개신교 드러낸 골 세레모니는 기본 안 된 행위”
조 교수는 “축구선수가 골 세레모니를 할 때. 개신교도 인 것을 드러내며 기도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를 두고 ‘종교의 자유냐 아니냐’고 갑론을박을 하는데 이는 서구에서는 이미 정리된 문제”라고 했다.
종교는 사적영역이고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간, 즉 축구장은 공적영역이기 때문에 사적인 자기 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FIFA가 종교 세레모니를 못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제 법인 스님이 말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한국은 다원주의 사회이면서도 이런 원칙이 세워져 있지 않다. 이것이 문제이고 과제”라고 했다.
“보살·시민이 같은 이유 ‘첫마음’에 있어”
조 교수는 이틀 전 입재식 인사말에서 참가자들에게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민이란 무엇인지, 땅끝이 무엇인지, 첫마음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조 교수는 “중생이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내면 보살이 된다. 지배를 받는 백성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면 시민이 된다. 보살과 시민은 서로 닮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땅끝은 땅의 끝일뿐만 아니라 바다의 관점에서는 바다의 시작이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면 새롭게 보인다”고 했다.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을 첫마음이라 부를 이유도 없다”고 했다.
조 교수는 마음을 능동·수동 두가지 면으로 설명했다.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 “황홀하다” “뭉클하다”고 하는 것은 대상을 보고 마음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마음의 수동적인 측면이라고 했다. “마음을 먹는다.” “무엇을 하기로 했다”는 것은 마음의 능동적인 측면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첫마음(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이는 능동적인 것을 말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발심이라고 한다. 처음 마음을 낸 것을 초발심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발심하다는 ‘give a thought’ 즉, 생각을 주다로 번역한다. 사물을 처음 봤을 때 의 느낌을 첫인상이라고 하듯이,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을 말할 때 첫마음이라고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무엇을 하려고 마음을 일으키되 좋은 의도를 갖고 마음을 내는 것을 ‘발보리심’이라고 한다”고 했다.
“깨달음은 상태인데 명사로 알아 문제”
보살(boddhi + sattva)에서 boddhi의 어근 buddh는 (잠을 자다가) 깨다이다. buddha는 잠을 깬 분을 말한다. 이것의 명사형이 boddhi, 깨달음의 지혜, 깨달음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깨달음은 상태이지 명사가 아니다”라며 “깨달음[覺]이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깨달음에 대한 오해가 빚어진다”고 했다.
본보기로 광고 카피 가운데 ‘행복이 가득한 집’을 들었다. 행복한 집이 있을 뿐인데,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는 표현을 통해 행복을 등가교환 행위를 통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보살, 즉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는 부처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나이든 사람을 뜻하게 됐다”며 “부처가 되기 위해선 보살이 되면 된다. 보살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내야 한다. 그것을 발심이라고 하고, 발보리심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어 “시민도 내가 시민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될 수 있다. 여러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저절로 그렇게 된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백성은 지배를 받는 자, 시민은 스스로 치자이자, 피치자인 까닭에 백성에서 시민이 되려면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원을 세우는 것은 내 인생의 지도 그리기”
조 교수는 “부처가 되겠다고 발심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대원, 큰 원을 세운다고 한다”며 “원을 세우는 것은 종교를 떠나 중요하다. 발심할 때 작은 것을 이루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겠다는, 생각을 구체화, 가시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보기로 “영화 보러 갈래” 이런 것들은 계획이지 발심이 아니고, “중생을 구제하겠다” “원수를 사랑하겠다” 같은 큰 바람이 발심의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대원·발원은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지도와 같다”고 했다. “대원을 세운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삶이 살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실패? 잘못 인정하고 다시 시도하면 어느새 성공”
조 교수는 “발원을 하고 수행 과정을 불교에서는 10단계로 나눴다. 각 단계에 모두 해당되는 공통된 지점은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이다”라고 했다.
조 교수는 “수행하는 사람이 마장에 부딪혀 뒤로 물러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은 중간에 그만 두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욕을 약속했다가 실패 후 대중에게 고백하고 다시 실천한 간디를 본보기로 들었다.
조 교수는 “담배를 끊어보니 내 욕망을 들여다보게 됐다. 10분마다 담배 생각이 나면서 담배를 태우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고마감일이 다가오는 것을 속으로는 은근 기다린다. 그때가 되면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담배를 태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가 막힘이 있을 때, 불굴의 의지로 다시 다가가고 조금씩 퇴전하면서 계속 나가는 것이 ‘향상일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원을 실천하는 길은 순탄치 않다. 끊임없이 퇴전하면서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정각을 이루고, 바람을 이룬다. 정치적으로도 시민권을 지키는 길이 된다”고 했다.
붓다 목소리 재생 아닌 재현해야 살아있는 불교
조 교수는 불타관을 ▷역사적 붓다 ▷진리로 확장된 개념의 부처 ▷구원자로서의 부처 ▷깨달음 혹은 깨달은 자로서의 부처로 나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처님 육성은 녹음테이프처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 하는 것이 역사적 가르침을 받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종교, 이념 등이 그대로 믿고 따르는 재생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화석화된 종교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경전은 이 시대의 눈으로 바르게 해석되지 않으면 종이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말에 얽매여 본래, 진정한 수식을 붙이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라며 “불교에서 진리는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동체대비라고 표현하면서도 한 번도 이를 실현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양학자들이 화엄·정토 등을 배우지만 관념적·추상적 세계에 머물고 마는 것처럼 한국의 엘리트들도 불교를 현실에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시민행성에 실천적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바로 여기, 사람들과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였다”며 “아무리 인문학을 말하더라도 실현시키지 않는다면 관념에 그친다는 생각에 시민행성을 시작했다”고 했다.
“팔정도 따르면 부처? 팔정도대로 살면 이미 부처”
조 교수는 “부처가 되기 위해 불교에서는 팔정도를 강조한다”며 “부처가 되고 나도 팔정도대로 산다. 때문에 팔정도대로 살면 이미 부처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1000년을 깨달음의 존재를 끝으로 새로운 불타관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불교가 지난 1000년 동안 정체해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가 진정한 불자라면 우리 시대의 불타관이 필요하다”며 “나는 이 시대의 불타관으로 ‘사람이 부처’를 제안하고 싶다”고 했다.
무비 스님은 “당신이 부처”, 도법 스님은 “부처로 살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내 스스로 ‘부처로 살자’니 쑥스럽다. 느닷없이 가족에게 ‘당신이 부처’라고 말하기도 생뚱맞다”며 “두 스님의 말 속에는 ‘사람이 부처’라는 개념 깔려 있다. 이를 발화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뭇 생명이 부처’라고 해야 한다. 돌부처에 빌지 말고 사람을 부처로 대하자는 것. 이것이 인문정신이다”라고 했다.
한편, 시민행성 인문캠프는 13일 오전 두륜산 트래킹을 끝으로 3박 4일 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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