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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사 가는 길은 처음이었지만 낮설지 않았다.
차분한 봄비와 함께 맞이한 작은 도시,
김천의 역마당은 어릴 적 살던 동네 부자집 마당터 처럼 멋없이 촉촉하였다.
수행을 한다고 내가?
습대로 행동하고 업에 밀려다녔던 것이 익숙한 나날인데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는 옮기기 힘든 결정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부곡동 성전사에 가시자 하였더니, 눈 앞에 네비게이션을 사용하기보다는
두 말없이 빗길로 내리더니 택시줄 뒤에 대기중인 기사에게 물어보고 온다.
그러더니 문을 세차게 닫으며 하는 말,
"원골에 성전사입니다. 그기가 부곡동인가는 잘 모르지만 여기서는 원골이라 부르고예,
부곡동에는 모텔이 많습니더"
기사의 행동과 뜻밖의 설명에 흑하고 웃음을 삼켰다.
김천역에서 얼마가지 않아 고성산 계곡물이 감싸도는 사찰 앞에 차를 세웠더니
일주문 어느 곳에도 성전사라는 글은 없고 그냥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시간 나면 읽으라고
비닐코팅한 신문기사에 정명스님의 사진만 보고 택시에서 내렸다.
주지스님 겸 멀티소임스님이신 정명스님은 대장전 단청작업을 하시는 분들과
작업 얘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단단한 미소와 다부진 체격의 스님은 한 눈에 봐도 무명솜 이불의 푸근함과
겨울철 차가운 눈의 매서움이 느껴졌다.
수행기간 내내 스님의 색깔은 이불의 속내처럼 하얗지만
넓은 눈밭이 새벽의 햇빛을 받듯 코발트 빛으로 푸르게 다가왔다.
도착한 날 오후1시부터 시작하는 수행은 예불로서 시작되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아또 삼마삼부따사!
운율에 맞추어 빨리어 원문이 예불로서 흐르듯 읊조려졌다.
부처님의 수승한 지헤의 운율은 바라밀이 짙은 스님의 음색으로 조아려 내려갔다.
수행일정과 규정을 설명하셨다.
하루에 9시간의 명상수행, 수행자들간 묵언, 오후불식, 핸드폰사용과 책읽기 금지다.
미리 홈페이지에 설명해 놓으셨으면 옷 대신에 오후간식거리를
밀수라도 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37차 수행자 가운데 양산에서 오신 스님 한 분이 계셨다.
그 스님은 행자시절부터 오후불식을 하셨단다. 다행이다.
오후에 간식으로 나오는 그 분의 군만두 만한 떡 '혹은' 삶은 고구마는 내 몫이다.
나는 계를 받고도 술을 마시며 낮선 외국음식조차 잘 먹는, 부처님께서 보실 때 못마땅한 불자이지만
오후불식이 주는 이익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면 몸과 머리과 가볍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에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올까봐 한 걱정은 기우였으며, 견딜만한 고통에 비해 얻는 이익이 많았다.
이번에 같이 공부한 도반들 중 금요일에 왔다가 일요일까지 수행한는 분도 계셨다.
그 도반은 말씀 안하셔도 뭔가 수행의 정도가 깊어져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스님 말씀이 우리도 이번 수행을 원만히 회향하게 되면 다음 수행부터 기간을 다소 조정 가능하다 하신다.
도반 중 또 다른 60대초반 보살님은 작년에 병원에 입원하라고 하는 것을
당신의 의지로 사대수행을 선택하여 건강이 좋아졌다 하며,
출가자도 하기 어려운 수행공덕을 쌓고 있다고 그 분이 없는 자리에서 스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과 비교되는 나, 저녁무렵 공양간을 지나가다 도반들이 입문시 공양한 바나나 하나를
얼렁뚱땅 하나를 베어 먹었다가 나중에 스님께서 수행법문을 앞두고 넌저시 짚으셨다.
앞으로 수행을 성실히 하겠으며 수행규칙을 어기지 않겠다고
인터뷰시간에 약속과 참회를 같이 했어야 했다.
하루 이틀 사흘 이제는 몸이 적응이 될 만도 하지만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말이 불자지 부처님 가르침을 몸으로 제대로 배워보지 못해 장애가 있어 그런지,
수행 중에 다리 저린 것은 기본이며, 그것은 수행 고충에 넣어주지도 못 하고,
반가부좌 자세에서 등부위, 특히 날걔뼈 있는 양쪽부위가 찢어 질 듯 아프다.
처음에 못 참아 내 옷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남몰래 앞으로 엎드려 스트레칭을 하였다.
길게 스트레칭하다가 대오각성(?)을 하였다.
도 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아플까봐, 잘 못 될까봐,
미리 예방 관리라는 미명하에 안이한 길로만 선택을 했던 것 얼마나 많았던가?
참아보자. 찢어질 듯 아프더라도 찢어지지는 않을테니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참아보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여태 몸 네가 아플까봐 다칠까봐 병 걸릴까봐 얼마나 조심하였나.
즉, 몸에게 마음이 거의 대부분을 따라 다니며 정성으로 수발하였다.
현재 처한 한계를 피하지말고 고통을 넘어야 새로운 국면이 펼쳐야만 과실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대오각성이랍시고 인터뷰시간에 스님께 말씀드렸다.
스님께서 강건너 언덕에서 손짓하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수행하며 자신과 싸우지 마십시오. 좌절하는 지름길입니다.
수행은 얻는게 아니며 쥐고 있는 것을 놓는 것입니다.
행복하고자 수행을 하는 것이며, 수행자가 행복해야 수행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이든지 알아차림이 안 되면 망상의 빈틈을 미소를 표해야 합니다."
차라리 수행의 기본자세가 안되어 있으니 나를 나가라고 하시면 나을 것을.
스님의 가르침과는 반대 방향을 용케도 찾아다녔으니 그러기도 참 쉽지 않다.
사실 수년 전 도서관에서 스님이 쓰신 '달을 헤치고 나오는 구름처럼'읽고
읽는 내내 전신에 그침없는 막대비를 맞는 것 같은 편안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당시 종교가 기복의 단계에서 벗어나, 뭔가 다른것을 추구하고 싶었으나,
절수행, 염불수행, 진언수행 등등의 수행으로 우왕좌왕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떤 불심이 깊은 분이 공개적으로 법문을 하면서 간화선은 한소식한 분은 있다하면서
그 과정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의 의식에 착 달라 붙었다.
그래 맞다!
불교의 시원은 육조혜능 선사가 아닌데 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마조 선문답을 이해하려고 하는거지?
부처님께서 '이 뭐꼬?'를 화두를 잡으셨을 턱이 만무한데 왜 그것을 들고 의정을 일으켜야 하지?
또 '권시궐'을 화두로 들고 염불처럼 외는 것도 아니며,
팔만사천개의 털구멍으로 온몸을 다들어 의단을 일으키라고 하지?
화두를 통한 간화선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밝혀진 프로세스는 재가에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나의 불심은 가뭄날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있던 시기에 정명스님의 글을 만난 것이다.
그 무렵 초기불교 접하기 시작하였으며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마치 운동을 책으로 배우듯
어둠속에 한걸음씩 걷고 있을 무렵에 수행의 갈 길을 밀밀히 적혀 있는 스님의 수행수기는
니미따의 빛보다 신이한 인연이었다.
그러나 나의 바라밀이 부족하였는지 인연공덕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고
성전사에 가고 싶다는 늘 생각뿐이었었다.
그렇게 벼르던 귀한 기회가 왔으니 수행의 한 순간은 당연 소중했다.
매시간 수행에 들어가기 전 부처님께 기도하였다.
'제가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부처님법에 의해 수행을 열심히 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한 수행공덕을 저를 비롯한 존재의 행복을 위해 회향 할 것입니다.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라고,
부처님께 습관처럼 도와 달라는 말을 빠트리지 못하는 근기이지만 딱히 다른 문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매시간 수행이 마치고 방선할 때는 부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도 빠트리지 않았다.
스님의 말씀대로 40여회 가까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런 저런 노하우를 많아서 인지
스님의 발원이 깊어서 그런지 알 수없지만,
짬짬이 읽어주시는 발원문 3종세트는 초심자에게 수행의 열정을 일으키게 만들었으며,
부처님의 수행방법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한 순간이라도 먼저 도착하게 지도하셨다.
그리고 부처님 법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소름 돋을 정도로 준열하게 일러주셨다
망상속에 보내는 먼지구덩이를 떠나 청산의 기운 속에서 부처님의 호흡따라
법향을 찾아간 느낌은 절절히 맑았다.
사회생활을 하는 불자들이 수행을 한다고 일주일여 생계를 던져 놓고 수행을 결심하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 농사를 짓는 심정으로 가계와 일터를
꾸려가겠다는 생각으로 살다 어느 순간 서있는 좌표점을 보면 엉뚱한 곳에
원하지도 않은 곳에 헤메이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자기계발이니 인생의 터닝포인트니 하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다시 꾸며 보려고 하였지만 그게 쉽지만 않았다.
자신의 노후대책은 나중 얘기이고 당장 자식들의 공부농사나 제대로 하겠나 싶다.
최근에 어디서 본 글중에 '아버지는 울 곳이 없어 슬픈 사람이다'는 말이 와 닿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픔이 이제 나의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 들어 오는 것 같다.
수행을 얘기하다 딴 곳으로 말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이것이 내가 수행을 결심한 동기다.
곁에 며칠 머물면서 뵌 정명스님의 얘기로서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한다.
재가 불자들이 스님의 어떤 부분을 맞아들여 법스승으로 삼는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선정과 교학을 열심히 공부하신 정명스님이 하심으로 우리 불자를 대해 주셔 감사하였다.
그 하심을 내 경험의 예로 들어 말을 하면 오히려 일천할 것 같아 다음 기회로 미룰까 한다.
정명스님은 깊은 공부에서 나오는 하심의 소리는 동굴이나 우물에서 울려나오는 듯
공명은 들은 것으로 스님에게 존경의 예를 표하고자 한다.
7박8일의 수행을 회향하였다.
현판도 없는 성전사에 입문하던 날처럼 조용히 법우가 내리고 있었다.
온갖 보배 비내리어 일체중생 이익하니(雨寶益生滿虛空)
중생들은 저마다 그릇에 따라 얻음이라.(衆生隨器得利益)
법성게중 일부가 생각나며 일주문을 나섰다.
'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오래전 어느 시인의 한 구절도 귀가에 맴돈다.
김천의 역마당은 어릴 적 살던 동네 부자집 마당터 처럼 멋없이 촉촉하였다.
사두~사두~사두~ |
